성경 연대기 (창조-심판)舊(구)컴 관련 자료실

2009/03/08 (15:34) from 125.178.14.38' of 125.178.14.38' Article Number : 72
Delete Modify samson Access : 6235 , Lines : 51
6 간네, 우륵, 우르시대 (2)
Download : 4 지도-아라랏-우르-3우르.jpg (981 Kbytes)

4 지도-아라랏-우르-3우르.jpg



아카드의 지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렇게 아카드의 군사적 지배를 받고있는 동안 간네는 하나님의 思想을 회복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신앙의 도성의 면모를 갖추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인 간섭은 피할 수 없었던 간네를 떠난 사람이 있다.
바로 벨렉의 아우인 욕단이다.
성경은 바벨 사건이 있을 때를 "에벨이 벨렉을 낳을 때"로 기록하고 있다.
에벨이 독립을 했다는 뜻이 되며,
또 벨렉이 왕권을 이어받으면서도 신앙의 회복운동은 지속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앙 회복만을 추구하는 벨렉의 모습이 못마땅한 욕단이
간네를 떠나 스발에서 메사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인 이란 고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스발은 악갓의 달의 도시인 시파르이다.
이 시파르는 세파르바임으로 불리는데, 세파르가 스발와임이다.
그리고 메사는 아라랏 산과 카스피해 사이 정도로 추정되는 지점으로서
아마도 메섹의 자손들이 거점을 잡은 지역으로 보인다.
이렇게 욕단 떠나는 일이 있을 즈음 또 한 일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우룩왕조의 시작이었다.
이 우룩이 건설된 시날 남부지역은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우트헤갈이 우룩을 건설하면서부터 남부지역에 도시국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이 우륵이 에렉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간네의 동쪽에 위치하던 에렉이 악갓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 이주한 것인지,
또 그 때 에렉의 왕이 우트헤갈이었는지,
아니면 에렉의 왕가의 한 사람인 우트헤갈이 자기 세력을 이끌고 내려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는지,
또는 간네왕가의 누군가가 욕단처럼 본가를 떠나 나라를 건설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르를 건설한 우르남무가 우트헤갈의 조카라는 점과,
남무 스스로가 자신이 "닙푸르(간네)의 수호자"라고 한 기록을 볼 때,
간네 왕가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우륵을 세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우트헤갈이 조카 남무를 데리고 우룩을 세우면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할 즈음,
바벨론도 점점 팽창하기 시작했고, 바벨론이 팽창하면서 상대적으로
악갓의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룩이 건설되고 그 후 6년 후 조카 남무가 남쪽으로 더 내려가 우르를 건설하면서
시날이 패권은 우르에 넘어간다.
그러나 간네, 우륵, 우르는 사실상 한 족속들로써,
그 중심세력이 우르에 있었을 뿐이고, 그 모든 행사를 남무가 했을 뿐,
지배적인 위치는 아니고 오히려 간네를 넘보는 바벨론을 저지하고
간네를 사수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남무가 시날의 지배권을 갖게 되자 엘람과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는 엘람이 악갓이 약화되자 그 지배를 벗어나서 시날을 호시탐탐 노리며
복수의 기회를 잡고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남무가 집권하고있는 18년 동안 엘람과 전쟁을 해야했고,
결국 남무는 엘람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아들 슐기가 왕위를 잇는다.


우트헤갈의 우룩.pdf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