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연대기 (창조-심판)舊(구)컴 관련 자료실

2010/01/15 (01:30) from 222.99.144.101' of 222.99.144.101' Article Number : 209
Delete Modify samson Access : 6639 , Lines : 50
9-3 갈레-우르(간추린 데라와 아브람 이야기 )(PDF)
Download : 1-4-3 우르 아브람과 데라-신 이름.pdf (9944 Kbytes)


*첨부파일을 열어서 보십시요*
*첨부파일을 열려면 "Adobe Reader"가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르에서의 아브람과 데라                                 2009. 03. 02
                                           
욕단이 떠난 후 벨렉은 온전한 여호와의 나라를 이루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런 소망은 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미 니므롯이 심어 놓은 인본주의 사상은 뿌리 깊게 박혀있었고, 언어가 혼란해서 흩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여호와의 사상을 향한 혼란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이 언어의 혼란은 사상의 혼란을 뜻하는 것으로써, 니므롯이 추구하고 심으려했던 사상의 일치를 못 보았다는 意味일 뿐, 그들의 사상의 분열은 또 하나의 다신교를 만들뿐이었다.
그러한 벨렉의 노력으로 다소는 이루어 가는 듯 했겠지만, 문제는 벨렉이 왕권을 아들인 르우에게 넘겨주면서 일어난다.

우르라는 도시는 벨렉의 아들 르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르우를 거꾸로 읽으면 우르인 점이 상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우르남무는 우르라는 도시를 세우고 닙푸르의 수호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르로 본거지를 옮긴 왕이라고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르우는 닙푸르의 수호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있을 만큼 닙푸르(간네)를 번성시켰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물론 벨렉이 있을 때도 그런 노력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벨렉이 추구하는 여호와 사상으로는 도시를 풍요롭게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모든 歷史를 보더라도 국가의 경제가 튼튼할 때는 신앙의 기조가 무너졌고. 신앙의 기조가 굳건할 때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歷史를 보더라도 솔로몬 시대에는 국가경제가 가장 풍요를 누리고 있었고, 당시의 금 보유는 사상 최대였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의 신앙은 바닥을 치고있었는데, 그 원인은 솔로몬이 두로와 교역을 하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 시대에 오면 히스기야는 신앙을 바로 세우기에 노력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그런대로 바른 모습을 보이고있었다.
그러나 그 때, 히스기야는 쳐들어온 아람의 왕에게 성전의 금을 모두 떼서 조공을 바칠 만큼 가난에 찌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렇듯이 지금 이 벨렉이 여호와의 사상의 기조를 뿌리내리려는 정책을 썼다면 국가 경제는 최악의 상태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벨렉의 아들 르우는 다른 정책을 썼을 것인데, 그것은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여호와의 사상의 기조보다는 인본주의적인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르우가 인본주의 정책을 쓰기 위해서는 전과 다른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힘은 곧 군사력으로써 주변의 도시를 장악하고 그들로부터의 위협을 피함은 물론, 모든 교역권을 가짐으로써 도시의 부를 꾀하는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런 정책의 결과로 닙푸르는 전과 다르게 부흥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주변 국가로부터의 위협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써 얻은 이름이 닙푸르의 수호신이라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닙푸르(간네)가 독립하고 간네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할 즈음 그 시대의 패권은 아카드가 가지고있었다.
아카드는 니므롯의 나라가 바벨 성과 대를 쌓다가 흩어지자 재빨리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빠르게 시날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 닙푸르(간네)도 독립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카드의 손을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카드가 갑자기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세계사의 자료에 의하면 아카드의 왕조 중 손자가 왕이 되었을 때 아카드의 궁인이 5,000명이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뜻은 아카드 성을 지키는 상비군이 5,000명이라는 뜻으로써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매우 많은 숫자의 군사를 보유한 것이다.
이를 우르시대와 비교해 보면 우르는 약 24,000명의 인구가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르의 상비군은 얼마나 되었을까...?
24,000명의 인구라면 상비군은 3,000명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카드의 군세는 당시로서는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는 군세였다.
그런 군세와 주변 동맹군을 결성하여 아카드왕은 엘람의 32개 성을 치고 조공을 받은 기록까지 남겼다.
그로부터 아카드가 힘을 잃을 때까지 엘람은 아카드에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아카드가 점차 힘을 잃게 되는데 그것은 닙푸르의 르우가 새롭게 성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르우에 의해서 닙푸르(간네)는 잠시 시날 중부의 패권을 잡았고 국가 경제는 안정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 이어서 독립하려는 각 도시 국가들은 닙푸르를 위협했을 것이고, 또 아카드가 번성할 때 조공을 바치던 엘람도 배신하고 자신의 힘을 키우고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르우는 왕권을 스룩에게 넘겨준다.
스룩이 간네의 왕권을 이어받았지만 주변국가간의 문제는 어찌하지 못하고 각각 도시국가가 독립하는 시대에 돌입한다.
----------
계속해서 보시려면 첨부파일을 여십시요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