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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닙푸르의 불결녀 문과 성결 문(여호와의 성지 닙푸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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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성지닙푸르,hwp)

여호와의 성지 닙푸르                                                     2009.07.28

노아홍수 이후 아라랏 산을 내려온 노아의 자손들은 각기 자기의 방향대로 나아가 자리를 잡는다.
그 중 셈의 아들 아르박삿은 시날 중부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자를 잡은 아르박삿의 자손들은 한 도시 국가를 세우게 되는데 그 곳이 바로 갈레인 것이다.
이 갈레라는 이름은 아마도 아르박삿의 아들인 가이난의 이름에서 나온 듯하며, 그 때 그 도시를 통치한 사람도 가이난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셈의 아들이 한 도시국가를 세울 즈음, 함의 아들인 구스도 한 나라를 세우는데, 그 자리가 기스로써 후에 이 도시국가는 니므롯이 이어받는다.
기스를 물려받은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을 시작한다.
그 특이한 사냥은 도시국가를 점령, 내지는 병합 작전으로써 시날 북부에  흩어져 사는 함의 후손들을 모이게 하고, 또 병합하는 일을 통하여 나라를 넓혀간 것이다.
그렇게 시날의 북부를 장악한 니므롯은 시날 중부에 있는 갈레와 에렉까지 손을 뻗치게 되고 결국 나므롯은 온 시날을 장악한 것이다.
아직은 시날의 남부지역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당시 시날의 남부지역은 늪지대 정도로서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부적합했거나, 아니면 사람은 많지 않고 땅은 넓으므로 굳이 남쪽까지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갈레를 장악한 니므롯은 갈레의 이름을 자신의 통치하에 견고하게 해 둔다는 의미로 칼라라 명명한다.
그러나 그런 니므롯의 통치는 바벨 성과 대를 건설하다가 흩어지면서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차례차례 니므롯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는데, 그런 중에 갈라(갈레)도 독립하여 그 이름을 간네로 바꾼다.
그렇게 독립한 간네는 한 때 부흥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고, 신흥 주변 도시국가, 이를테면 이신과 같은 가까이에 일어난 도시국가와의 분쟁에서 밀리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또 멀리 있기는 하지만, 바벨론과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간네가 유지되는 동안 또 한 세력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우륵이었다.
그러나 우륵의 세력은 아주 잠깐이었고 곧 이어서 우르의 등장과 함께 시날의 패권은 우르에게 넘어가고, 간네 또한 우르의 지배를 받게 된다.
시날의 패권을 쥔 우르는 엘람과의 전쟁을 벌린다.
엘람과의 전쟁은 우르가 패권을 갖고 있는 동안 계속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엘람과 시날의 도시국가와는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대적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엘람과 전쟁을 하던 우르의 남무는 18년쯤 되었을 때, 전사하고 만다.
남무가 전사하자 이어서 아들 슐기가 왕위에 오르고, 엘람과는 화친을 함으로 잠시 전쟁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슐기가 엘람과 화친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슐기가 왕이 되고 나서 닙푸르의 도시와 신전을 정비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만일 슐기가 계속해서 엘람과 전쟁을 했다면, 우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닙푸르의 도시와 신전을 정비할 여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전쟁을 하면서도 닙푸르의 신전을 정비할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도 남무는 전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무가 전사를 한 것으로 보면 우르의 힘은 엘람을 넘기에 버거울 정도였을 것이고, 따라서 슐기는 전쟁보다는 화친을 택하고 남은 여력으로 닙푸르를 정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르에서 볼 때, 닙푸르가 어떤 도시이기에 슐기가 도시와 신전을 정비했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당시 닙푸르(갈레, 간네)가 여호와의 성지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면,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갈레를 세우면서 그 도시에 여호와의 성전도 함께 세운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여호와의 성전은 니므롯이 갈레를 장악하면서 훼손되거나 아니면 무의미해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갈레 사람은 여전히 그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숭배했고,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을지라도, 유지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니므롯의 힘에 눌려서 제 기능을 보이지 못하던 여호와의 성전은 니므롯의 사상이 분열되면서 간네도 독립함으로써 새롭게 부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간네의 부흥을 통하여 더욱 굳건한 믿음의 도시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부흥은 잠시 뿐이었을 것이고, 이어진 신흥 도시국가와의 알력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의 발전은 힘들어서 현상 유지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렇게 간네가 주변 신흥 도시국가와 바벨론의 팽창에 시달리자, 이를 극복하게 위해서 세운 나라가 우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우륵을 세운 우트헤갈이 어떤 인물인지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당시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간네에 있는 셈의 후손 중 하나일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시날 북부에 있는 함의 후손 누군가가 중부를 지나서 남부 시날에 우륵을 건설 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이고, 또 중부에 셈의 후손들이 진을 치고있는데 쉽게 넘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륵을 세운 우트 헤갈은 시달리는 간네를 떠나서 독립한 셈의 후손으로써, 당시 간네 왕의 동생 내지는 친척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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