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On (하나님의역사와역사 1004) 대화방

제목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전격 공개\\\\(감사)
이름  김인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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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과 안식일은 다르다. 안식일은 이미 성취되었다.
주일성수라고 주장하는 사상에는 구약의 사상에 의해서 매주 일요일 날 자체가 거룩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이와 같이 일요일을 성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을 신약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주일을(일요일) 성수 한다는 이상한 사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주일날 모든 율법적인 요소를 주장한다. 그 예로 장사를 못하게 한다든지 타지에 가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이러한 것들이 구약의 안식일 사상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주일보다는 일요일이며 그리고 특별한 날이 될 수 없다. 단지 예배드리는 날이기에 특별한 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가 아닌 주일 예배 성수가 정확한 것이다. 또한 신약의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같이 생각하고 주장하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주일이 안식일이 된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단지 주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신 날이다. 구약의 안식일을 신약의 주일로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타난 것이다. 신약의 일요일은 주님이 그 날에 부활하신 날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날을 영적 안식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구약의 십일조를 신약의 헌금으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성경에 대한 이해로 일선 교회에는 더더욱 율법적인 것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교회가 성경에 대한 영적인 상태가 이 정도면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세속화 된 증거인가? 또 이를 개혁하려는 자를 얼마 전 희생시키는 현실은 과거 종교개혁 시대에서 암흑시대를 연상시키고 있다. 주일을 안식일로 가르친 것은 이미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주일은 안식일이 결코 될 수 없다.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안식일로 가르친 결과는 주일날 장사도 못하게 하는 구약의 율법적인 신앙으로 가르친 것이다. 일요일이 그렇게 신약의 안식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국가시험도 교인에게 치르지 말라는 엉뚱한 주장을 한 경우도 있다. 또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일요일이 특별한 주님의 날이라는 배타적인 사고에서 기인된다. 주님의 날은 일요일만이 아닌 모든 날이다. 주일이 특별한 날이 될 수 없다.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그 날이 중요한 날이라는 것이다. 즉 예배드리는 날이라는 의미이지 그 날이 특별한 주일이라는 거룩한 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이러한 공적 예배와 같은 모임에 의해서 중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일은 결코 특별한 날이 아닌 것을 구약의 안식일과 연결시켜서 율법적으로 만든 것이 사실이다.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가르친 것도 율법적인 요소이다.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일을 안식일로 가르친 결과 주일에 금욕적인 것이 강조되게 만든 것이다. 장사도 못하게 한 것은 이미 주일이 단순한 날이 아닌 거룩한 주일이라는 말대로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주일날 친교운동도 절제시키게 하고 장사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주일날 장사하지 말라는 성경적인 근거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약성서에서는 날이나 모든 것이 신앙에 의해서 다스려지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해석한 것은 구약의 율법적인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일요일 날 예배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있기에 일요일이 중요한 날이 된 다는 것이다. 예배 때문에 다른 날보다도 일요일이 중요한 날이 된다. 이는 일요일이 거룩한 주일이 아니라 일요일 날 성도가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드리는 날이기에 거룩한 날이라고 부르는 된 것이다. 성도의 예배와 성찬이 없으면 그 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주일이라는 말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날이 성도에게 있어서는 같은 날이다. 그리고 그 중에 더 중요한 날로 우리가 사용하는 날이 있다면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요일이 중요한 날이 된 것은 성도들이 예수의 부활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그 날에 주님이 부활하였고 성도가 모여서 예배드린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이해는 역시 십일조와 같이 예수의 죽음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안식 후 첫날에 예수께서 살아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날은 통상적으로 토요일로 알고 있다.
이날에 예수가 안식하신 것이 우연이 아닌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문자적인 성취로써 예수가 안식하신 것이며 그날이 문자적으로 토요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금요일 날이 유월절 어린양 예수를 문자적으로 상징된 것이 가능하다면 토요일이 예수가 안식한 날이라는 이러한 해석이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구약에서 유월절이 금요일로 지켜진 것이 장차 예수로 성취될 그의 십자가 죽음이라면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예수의 안식인 토요일과 연관된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은 그 안식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안식이 예수의 안식인 토요일에 들어간 무덤에서의 안식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로 일요일 날에 신약의 새로운 모임의 날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금, 토, 일의 의미는 유월절의 어린양과 그의 안식과 그리고 그의 부활의 날이라는 연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주일을 성스러운 날로 지키는 것보다는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모여서 예배드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모이지 않고 부활한 일요일에 모인 이유가 주님의 부활과 깊이 연관 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교회의 전통이 된 것이라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 모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금요일과 토요일과 연관되어진다. 그렇다고 유월절을 지키거나 토요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이라는 날짜를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과 연관 된다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날짜를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예수의 부활의 의미로써 모인다는 것이다. 만약에 금요일 날에 예수의 죽음을 생각하고 모인다면 이는 날짜를 지키는 것이 아닌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금요일에 모인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예수에 대한 내용에 의해서 형식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형식이 날짜라면 내용은 금요일 날에 죽은 예수가 될 수도 있고 토요일 날에 안식한 예수가 될 수도 있지만 부활의 의미가 예수의 지상사역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라는 의미이기에 더 중요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경은 부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같이 이 예수의 부활이 중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예수의 부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가 일요일 날 부활한 날에 모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된 것이다. 예수가 부활하였는데 굿이 토요일에 공적인 예배를 드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형식인 날짜가 아니라 내용인 예수의 부활사건에 의해서 예배드리는 공식적인 날이 일요일로 정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의 의미는 주님이 과거 부활한 날이며 이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모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들도 마치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부활이 일요일에 되었기에 일요일에 모인다는 의미일 뿐이다. 주님의 부활로 일요일에 모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과거의 일요일과 같이 일요일에 모여서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드린 것이다. 그 기억한다는 것이 부활만이 아닌 금요일의 사건과 토요일의 사건과 그리고 일요일이 부활을 연결해서 일요일에 모여서 성찬을 한 것이다.(성찬이라는 형식을 천주교는 우상화 한 것 같이 개신교는 일요일을 우상화한 것이다. 일요일이 예수가 부활한 날이라면 금요일은 죽음의 날이며 토요일은 안식의 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연결해서 부활한 일요일에 모인 것이다. 일요일에 모여서 그들은 부활만 기억한 것이 아닌 일요일 이전에 금요일의 사건과 토요일의 안식과 그리고 일요일의 부활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일요일 날 모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성찬이다.(성찬은 형식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 것으로 주님을 기억한다) 성찬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일요일 날 모여서 기억한 것은 일요일의 부활과 함께 성찬으로 금요일의 죽음을 함께 기억하고 기념한 것이다. 이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지나갔다는 것으로 가능하다. 이미 예수의 죽음은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에 성찬은 마치 그 이전 금요일의 유월절 어린양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일요일은 이미 금요일 토요일을 거쳐서 일요일이 되기에 공적인 성찬이 일요일 날 된 것은 이러한 의미가 더더욱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일요일에 모인 것이 부활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를 동시에 기억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일요일에 모여서 금요일의 예수에 대한 희생의 성찬이 사라진 것은 일요일의 의미를 과대 포장하고 있으면서도(구약의 안식일과 같이) 일요일과 금요일과 토요일을 연속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예수의 삼일 동안의 신앙에 대한 것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성찬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할 수만 있으면 해야 되는 것은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 일요일만이 아닌 금요일의 죽음과 토요일의 안식을 거쳐서 일요일에 부활한 예수로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낸 의식이 만찬이라는 것이다.

그 날이 평범한 일요일 날인데 과거 일요일에 예수 부활의 사건이 있었고 그리고 성도들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게 됨으로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의미는 일요일이 거룩한 주일이 되어버리는 날로 바꾸어진 것이 아니라 날은 똑같은 날인데 주님의 부활의 사건이 과거 일요일에 주님이 부활하신 것으로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일이라고 부른 것도 현재 성도들이 모이는 일요일 날이 주일이라는 의미보다는 과거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 한 것이며 이는 현재의 일요일을 보고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과거의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 날이라고 부르는 것을 줄여서 주일이라고 불러야 한다.(단지 일요일에 주님이 부활하신 날) 그런데 주님의 부활이 중심이 절대적으로 되어야 그날에 모이는 것이 의미 있고 또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일의(부활의) 내용이 상실되면서 내용보다는 가톨릭은 보이는 성찬을 개신교는 보이지 않는 날을 우상화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보이는 성찬과 보이지 않는 예수의 내용(죽음과 부활)이 합리적으로 이해 될 때에 개신교의 일요일 우상에서 벗어나고 가톨릭의 성찬 우상에서 벗어난다.
만약 현재의 일요일 날이 특별한 날인 주일이 된다면 이는 잘못이다. 과거의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한 것으로 일요일 날 부활했다는 것에 의해서 오늘날의 일요일에 모이면서 과거에 이날에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일요일이 주일이 된다고 주장하면 이는 안식일과 같이 된다. 만약 이러한 주장대로라면 정말로 주일은 예수가 부활한 한 날 만이(안식 후 첫날) 주일이라고 주장해야 된다. 그러나 그 날은 이미 약 이 천년 전에 지나갔다.
날이 중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일요일이 주일이 된다는 사상은 구약의 안식일 사상과 연관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했으니 모든 일요일에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또는 예수의 죽음인 금요일과 토요일과 연관해서 매 주 일요일 날 모인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약에서 주일의 의미가 전적으로 과거 일요일 날에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주일이라고 부르기에 현재의 날이 중요한 날이 아닌 예수가 과거에 부활했다는 것이 즉 부활이 중요한 것이 된다. 그 의미는 주님이 일요일에 부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외에는 다른 무게 있는 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일요일이 특별한 주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과거 예수가 죽어서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가지고 주님이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의미로 일요일에 모인다는 것뿐이다. 지금의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그 날 자체가 주님의 날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 오늘과 같은 일요일에 부활한 것으로 일요일에 모이고 그리고 과거 일요일에 부활한 주님을 기억하고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것 뿐 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날에 무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거 일요일 날에 예수가 부활한 것이며 그 부활이 일요일에 되었기에 지금도 일요일에 모이게 된 것이다. 날이 귀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시간과 공간은 월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똑 같다) 성도가 또 일요일에 모이는 이유도 주님이 그 날에 부활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모인다. 과거 주님의 부활의 사건과 그 사건이 일요일에 되었기에 그 사건 때문에 모이는 것이지 날 때문에 모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귀한 것이며 그 부활이 일요일에 되었기에 일요일 날에 모인 다는 것이다. 비유로 말한다면 그릇은 같은 그릇인데 일요일이 모든 성도들의 예배의 그릇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그 성도들이 귀한 것이지 그릇이 귀한 것이 아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이해하면 예수가 죽음으로 안식한 그 토요일 날이 구약에서 기다린 안식일 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킨 것은 이 예수의 안식을 두고 지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토요일에 안식한 것이며 이것은 구약에서 지켜온 안식에 대한 성취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안식은 성취된 것이다. 그 성취로 신약의 백성은 더 이상 구약의 안식을 지킬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은 이미 예수로 성취된 것이며 그 안식의 처소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안식의 처소는 하늘나라가 된다. 예수의 오른편 강도가 죽으면서 낙원에 간다는 약속을 받은 그곳은 예수가 죽기 전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고 그 처소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처음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구약에서 죽은 모든 백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가 토요일 안식으로 처소를 준비한 것으로 그 곳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죽은 성도들은 예수가 준비한 처소에 믿음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안식이 여기가 아닌 하늘에서의 안식이 있다는 것이다. 육체를 벗고서 참으로 안식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일은 모든 날이 된다. 모든 날이 구원의 날이다. 안식일은 이미 그림자로 있었던 약속이었고 그리고 믿음으로 이제는 그림자가 아닌 실재로 죽어서 낙원이라는 안식처소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죽은 자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음부라는 곳에 있었던 이유도 예수가 오셔서 그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예수의 죽음으로 무덤이 열리는 사건)

예수가 죽음으로 안식한 것이며 그 안식으로 그의 육체에서 벗어난 것이고 하늘에 올라간 것이다. 그 하늘에 올라간 것과 그 곳이 강도에게 말한 죽은 자들의 처소인 안식의 처소가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 말한 그 안식의처소가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토요일 안식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후에 죽는 모든 성도들은 죽으면 바로 안식의 처소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창세기에 창조에서 하나님이 안식하신 그 안식을 범죄로 말미암아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한다. 그리고 그 안식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계속 기다려 오다가 비로써 예수로 안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있기 전에 창세기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사람이 육체를 벗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올 것에 대한 약속과 같은 성격이다. 영이신 하나님이 제 7 일에 안식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육체로 있는 자들의 안식이 아닌 영으로 안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육체를 벗고서 안식하는 것이 처음 창조 때부터 약속된 하나님의 제 7 일 안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식에는 누구도 현재 육체로 있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했으며 그리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참 안식이 세상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그 안식의 처소(낙원)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은 세상에 안식이 없고 오직 우리가 죽으면 참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구약에서 약속된 안식을 성취했다. 그날이 예수가 죽고 무덤에 들어간 안식의 날인 토요일 이라는 것이다 이 토요일의 의미는 금요일과 연결되고 일요일과 연결된다.
이는 사람의 육체적 죽음과 그리고 안식과 그리고 장차 부활에 대한 삼 단계를 이룬다.
예수의 죽음과 예수의 안식과 예수의 부활은 마치 성도들에게 예수와 함께 세상에서 실재로 죽고 예수가 이룬 안식처소에 들어가고 그리고 예수가 부활한 것 같이 재림 때에 부활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사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죽고 안식하고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삼 단계에 차례로 적용된다.
이와 같이 성도의 삶이 예수의 죽음과 안식과 부활로 차례대로 적용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이 되기 전에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의 죽음으로 죄 사함으로 인도되고 그 가운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소망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예수가 이룬 안식의 처소와 그리고 예수가 다시 와서 육체를 입히는 재림의 사건이다. 일요일에 모이는 것은 부활의 날이라는 의미가 강하며 이는 주님의 부활을 소망하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죽은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함께 그의 죽음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십일조만 중심으로 다루었지만 사실 지금의 모든 헌금이 신약시대의 헌금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정해진 헌금의 특징이 작정헌금이다. 건축 작정헌금이나 기타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작정해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서원 헌금과 같다. 그러나 성경은 서원해서 드리는 것은 특별한 것이며 헌금은 일상적인 것으로 믿음에 의해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그러날 율법화의 특징은 사람의 행위가 중요시 된다. 어떻게 드리는가? 누가 드리는가? 그리고 교회는 이에 발맞추어서 그러한 제도를 수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를 발표하고 기제하고 공개하고 또 그 헌금을 드린 조건으로 특별히 기도해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참 신앙이 아닌 기복신앙에 근거한다. 이러한 신앙은 각종 교회의 헌금제도인 주정헌금, 절기헌금 등 지금의 헌금이 철저히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주 얼마씩 정해지는 헌금은 신앙을 율법적으로 의식화 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적인 성격은 의식화 되어서 사람이 드리는 감사의 본래 목적보다 사람이 만든 제도를 사람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본래 사람이 예수에 대한 감사에 의해서 드리는 것이 신약의 참 감사이다. 교회의 절기헌금은 이미 구약의 절기와 흡사하게 닮아간 것이다. 신약시대에 절기가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절기가 아닌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모이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이미 예수의 영이 있는 자들이다. 구약 시대의 매주 모이는 안식일이 신약시대의 주일로 이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치 매주에 모이는 절기와 같이 된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절기 구약에 있듯이 신약에 절기를 만들었다. 예수에 대한 절기들은 이미 우리의 신앙이 율법적인 신앙으로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
성탄절이 무슨 우리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가? 우리의 구원이 아기예수가 아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으로 이미 초대교회는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 되었는데 다른 부활절과 부활주일 그리고 고난주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현재의 우리가 모이는 일요일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절기를 놓은 것이다. 그러한 증거가 초대교회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기념하기 위해서 모였고 일요일에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도 장차 재림 때에 부활한다는 소망을 가지고서 모인 것이다. 예수의 성탄이 우리의 기념이 될 수 없다. 성탄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를 위해서 죽고 살아난 구원의 사건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이다. 성령 강림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성령이 우리에게 함께하고 있는데 절기를 지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는가? 성령강림을 지키는 사상은 초대교회에서 근거한 것인가? 성경적인가? 바울은 예수의 죽음만이 자신의 자랑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가 하늘에 멀쩡히 살아서 계시는데 아기 예수를 기념한다는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우리는 아기 예수를 기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기로 오셨던 이유가 우리들을 위해서 죽고 살아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에 모여서 예수님이 이루고자 했던 그 성취인 죽음을 기념하고 부활을 소함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예수가 과거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죽었기에 그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사건 그 행위에서 우리의 감사와 기념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찾아야 된다.

절기와 기념은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구약에서 절기는 앞으로 올 것을 두고서 기다린 성격이라며 구약의 절기는 약속의 성격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은 기념이 있다. 이는 구약의 절기와 달리 과거 예수가 이룬 구원의 일인 십자가와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며 그리고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그리고 미래 재림으로 부활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주일의 의미가 회복되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앙이 중심이 된다.(초대교회는 그랬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사람의 문화 행사가 중심이 된다) 성탄절을 대대적으로 행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적 문화유산이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 예수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아기 예수가 아닌 하늘에 계신 예수 즉 부활하여서 영광 중에 계신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자이다. 이미 아기 예수가 과거가 되었기에 우리는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닌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역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출발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출발한 교회라는 의미에서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고 부활로 우리의 부활을 소망한다. 이미 기다리는 절기가 필요 없고 실재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과거 예수의 죽음이 있었고 그리고 이를 현재에 사는 자들이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닌 그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주일에 모이게 된다. 또 부활을 소망하게 된다.
이미 재림이 언젠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날을 알 수 없고 우리는 믿음으로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재림에 대한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제 구원으로 들어 올수 있는 과거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사실 매주일이 예수의 과거 죽음에 대한 기념일이며 그리고 매주일이 예수에 대한 소망을 바라는 모임이다.

<참고 성경구절>
(창세기 2장 2절, 레위기 23장 3절, 마태복음 28장 1절, 히브리서 4장)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 : 9-11절)

=신구약 전체연구에서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해설..................김 인찬 목사=

주일과 안식일에 대한 것(2)
정정: 먼저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 다는 글에서 모든 날이 주일이라는 것을 정정하려고 한다. 모든 날 중에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을 주님이 부활한 날이라는 의미(상징적)로 일요일이 주일이 된다는 것이다.

(내용: 예수의 죽음은 기념이며 예수의 부활은 소망이다)
주일이 주님의 부활로 모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주일이라는 용어가 가능하다. 이는 주님의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일요일에 된다는 것에서 주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날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부활을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은 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모인 동시에 자신도 장차 주님으로 부활 할 것을 소망하고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주님에 대한 부활에 의해서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는 날이기도 하다. 사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된다. 기념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기념이 아닌 소망한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기념해야 되는 것이 성립된다면 주님의 부활은 소망한다는 것이 성립된다. 왜 죽음이 기념이 된 것인가? 이는 이미 모든 육체로 있는 사는 자들이 예수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모든 육체가 부활한다는 것이다.

모든 육체가 죄가 있든 죄가 없든지 부활한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세상의 모든 육체의 죽음에 대한 죽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 와서 예수의 죽음에 모두가 적용된다. 문제는 죄를 해결 받았는가? 가 중요한 것이다. 믿고 죽었는가? 믿지 않고 죽었는가? 이다. 예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라면 예수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 대한 부활이다.

그러나 이러나 예수의 죽음으로 얻는 죄 사함과 부활로 얻는 북은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은 시간적으로 사람이 살면서 예수의 죽음에 적용되지만 육체의 부활은 동시에 부활한다. 모든 육체가 재림 때에 동시에 부활한다는 것이다.(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산자들에게 해당--순서대로)

그리고 성도는 주일에 이러한 부활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도만이 이러한 주님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도 부활 할 것이지만 그들은 죄 사함을 얻지 못한 자이며 부활한 주님을 기다리지 않고 있다가 부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에 대해서 기다린다는 것이 주일의 의미가 된다. 과거 주님이 부활한 그날에 우리가 모여서 기념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부활을 바라보는 이중성이 나타난다. 주님의 부활은 기념이 될 수 없다. 그 이유가 주님이 현재 부활의 주로 계신다. 기념이 아닌 지금도 계속 계시는 현재의 상태라는 것은 부활한 일요일에 우리가 모이는 것은 과거에 주님의 부활에 대한 것과 부활한 주님이 현재 살아계신다는 것으로 주일에 모이는 것에는 두 가지의 측면이 나타난다. 먼저는 과거 이날에 주님이 부활했다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그 부활한 주님이 하늘에 계시지만 이 땅에 재림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성찬은 금요일에 죽은 예수에 대한 죽음을 기리는 것이며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에 그러한 기념을 행하는 것이다.

동시에 부활의 날인 일요일에 매주 모인다는 의미는 장차 부활에 대한 소망 가운데 우리가 모인다는 것이다. 장차 부활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다. 현재 주님이 부활한 몸으로 하늘에 계신다. 이는 이미 과거 예수가 육체로 죽은 사건은 기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기념이 아닌 현재 우리가 부활한 주님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과거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는 것보다는(기념 보다는) 과거 부활한 주님이 현재 부활하신 상태로 하늘에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이 세상에서 부활한 일요일 날에 모인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에 계신 주님이 오실 때에 자신도 장차 부활 할 것을 믿고 현재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념이 아닌 현재의 소망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이미 영원히 지나갔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시작되었고 그리고 현재에도 살아계신다는 것으로 우리도 그 부활하신 것처럼 소망한다는 것이 합당한 이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으시고 부활한 주님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인도로 말미암아 먼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자들이 성도들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주님의 죽음과 상관없이 산다. 그렇다 해도 그들도 장차 성경에서 말한 것 같이 부활한다. 결국 그들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지 않고 죽은 것이며 살아서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한다.(죄 사함) 이는 주님의 부활을 동시에 소망할 수 있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 이미 부활한 주님으로 자신의 부활을 기다리는 것이 또 한 가지의 주일의 의미이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면 이는 지나간 것으로 현재에는 지나간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부활은 영원한 부활이 되었고 그 부활의 주가 항상 있으며 그리고 그 부활의 주가 오시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신앙이 된 것이다. 만약에 부활을 기념한다는 것이 된다면 하늘에서도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되어서 매주 일요일에 죽은 영혼들이 기념으로 모이게 된다는 이상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부활을 기념하는 매주일의 모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나타난다. 부활은 영원한 성취이다.

그리고 현재 예수가 부활의 상태로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이 땅에서 기념이 될 수 없고 그 부활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소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기념인 주님의 죽음에 대한 것은(성찬-만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활하면 더 이상 기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이 세상을 떠나면 낙원에 있는 영혼들은 예수의 육체적인 죽음을 기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죄악 세상에서 구원하심을 찬양하고 있으며 오직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육체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살아있는 자들의 공통점은 부활에 대한 기다림이라면 다른 것은 육체로 살아있는 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있지만(육체의 죄 사함의 기간) 육체를 떠난 성도들의 영혼들은 사실상 기념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예수로 함께 죽어버린 자들이 된 것이다. 즉 예수와 함께 육체로 죽어서 예수와 함께 자신의 육체가 지나간 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살아있는 자들은 아직 예수와 함께 죽어야 되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육체의 세상에서 과거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기념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이 있기 전까지 육체로 있는 자들이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를 떠난 자는 오직 예수의 부활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일이 장래 재림으로 오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문자적으로 성경에 의해서 가능한가? 성경은 이 날에 대해서 어떤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구약에서 창조가 육일 동안에 되었고 그리고 안식하시고 그리고 새로운 날이 출발한 것이다. 즉 제 7 일은 안식의 날이라면 이는 모든 육체의 쉼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 8 일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제 8 일이 의미하는 날은 창조 때에 하나님이 쉬시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이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작에 의해서 새로운 출발이 된다. 왜 제 7 일에 새로운 출발이 아닌 제 7 일을 거쳐서 제 8 일을 새로운 출발로 이해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제 7 일에 안식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 8 일이 공식적인 새로운 첫날이 된다. 제 8 일이라는 주일이 첫날이 된다. 그러므로 제 8 일이 의미는 문자적으로도 이해할 때 주님의 부활이 그날에 이루어진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의 육체의 안식인 토요일을 거쳐서 주일날 부활한 것이 된다. 이는 모든 육체의 안식인 죽음에 대한 새로운 출발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세상에 대한 첫 출발이 창조 때에 하나님의 안식으로 그 다음날이(8일)로 되었다. 이것이 첫 세상 우리가 창조 된 세상에서 된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창조는 새 창조로 주님이 오시는 재림으로 시작된다. 주님이 왜 제 7 일을 거쳐서 제 8 일에 부활하셨는가? 이는 재림으로 오는 새로운 날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예수가 토요일에 안식한 것은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육체의 죽음으로 안식에 들어가지만 예수가 일요일에 부활한 것은 모든 사람이 그러한 제 8 일의 시작과 같이 부활로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과 함께 죽고서 그의 안식에 들어가는가이다. 이렇게 일요일에 부활한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상징적인 부활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주님의 육체적 죽음--------주님의 영혼의 안식-----주님의 육체적 부활이 적용되는 것은
성도의 육체적 죽음---------성도의 낙원의 안식----성도의 육체적 부활로써 재림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는 주님의 금요일과 같이 모두가 먼저 죽어야 된다는 것이 세상에서 실재적인 죽음으로 나타나며 그리고 주님의 안식과 같이 세상을 떠나서 안식의 처소에 영혼이 안식하며 그리고 주님이 부활한 것 같이 그 낙원의 성도들의 영혼이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에게는 죽음이 과거가 되기에 우리가 그의 죽음을 기념하고 예수에게는 지금 부활로 있기에 우리가 부활의 주님이 오시는 것을 소망한다. 결국은 부활에 대한 소망은 과거 부활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하늘에 있는 예수의 오심을 기다다리면서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다.

앞서 글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안식과 그리고 부활의 관점에서 금, 토, 일의 사건으로 연결해서 살펴보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적용으로 접근 한 것이다.
특히 우주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람들의 죽음과 우주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람들의 안식과 우주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나누었다.

믿는 자들은 이러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안식이 낙원의 안식이 주어지고 믿지 않는 자들은 음주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 했다는 것이다.
결국 안식인 제 7 일의 의미는(창세기의) 세상의 기간에서의 임시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안식이 아닌 재림 때까지 있는 안식이라는 것이다.
7이라는 숫자가 하나님의 완전한 수가 된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완전한 수는 육체로 사는 사람들의 제 6 일이라는 기간과 제 7 일이라는 하나님의 안식이 세상에서 있을 것을 두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제 7 일의 안식이 끝나는 그 때가 재림으로 오는 8일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출발이다. 제 7 일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그 안식이 끝나는 때가 새로운 출발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제 6 일안에 머문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스도가 와서 이재 마지막 제 7 일의 안식을 성취하시고 그리고 이제 제 8 일이라는 영원한 출발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다. 그들이 우리이며 그리고 제 7 일의 안식에 들어간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영원한 안식이라는 의미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안식을 의미하지만 그 기간은 정해진 때까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재림으로 육체를 입는 그 때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부활을 기다리는 재림의 소망을 두고 제 8 일이라는 일요일 즉 주님이 부활한 날에 모여서 그 때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는 이러한 의미이며 그가 하나님이 이루려는 안식을 이루는 주인으로써 온 것이다. 그가 안식을 이루기 위해서 무덤으로 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 날이 토요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약의 유월절이 금요일이 된 것과 구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구약의 오순절이 신약의 영적인 교회의 출발일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닌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에 재림으로 오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제 8 일과 같은 새로운 시작으로 영원한 시작이며 우리가 주일에 모이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소망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날에 주님이 오시는 것과 그리고 우리의 부활의 몸으로 그의 영원한 혼인 잔치에 참여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 이 세상은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제 6 일이라는 것에 있고 믿고 죽은 자들은 제 7 일이라는 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있으며 그리고 제 8 일이라는 영원한 시작인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창조의 제 8 일의 출발이 죄로 말미암아 불완전한 출발이라는 것이며 장차오는 재림의 날인 제 8 일의 날은 완전한 출발로 영원한 출발이 된다는 것이다.
한 번은 6일에 창조된 아담과 화와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이 된 것이며 이는 아담으로 오는 모든 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영원한 8일이라는 영원한 출발은 더더욱 소망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제 6 일이라는 죄악 세상에 오셔서 그리고 제 6 일이라는 곳에서 죽으시고 그가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제 7 일의 안식을 성취하신 것이다. 제 8 일의 영원한 출발은 예수로 될 것이며 그 순서는 먼저 제 6 일안에 있는 자들이 예수가 6일이라는 세상에서 죽은 것처럼 그와 함께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죽어야 되며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예수가 이룬 하늘의 안식 처소인 제 7 일이라는 영원한 안식에 믿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예수가 제 8 일에 부활한 것처럼 참으로 오는 영원한 제 8 일인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구약의 제 7 일이 마치 성도의 안식에 대한 그림자였다면 신약에서는 안식에 실재로 들어가는 것과 그리고 제 8 일에 부활한 그것이 장차 예수로 오는 영원한 출발인 재림의 날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룬 제 6 일에서의 죄 사함과 이루었으나 죽음으로 들어가야 할 제 7 일의 안식과 장차 이루어질 제 8 일의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두 가지 소망이 있다면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주님이 오시는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김 인찬 목사

2003-11-29 13:1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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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Re: 신원을 밝힌후../한 달 전에 기도원에 김주영 2003-02-19 1164
338               Re: 한 달 전에 기도원에?? 구원?? 2003-02-19 1237
337  어떻게 이해 하여야 하나요 이정표 2003-01-27 1028
336  제사장=목사님 ? 이정표 2003-01-23 1260
335     Re: 제사장=목사님 ? 김주영 2003-01-26 1178
334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될지 원... ... [1] 이석규 2003-01-12 2326
333  제가 오바한 것이 아닌지... 이석규 2003-01-12 1132
332  죽어도 물이 물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김주영 2003-01-11 1146
331     Re: 죽어도 물이 물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김주영 2003-01-12 1295
330  뉴스엔조이에서 나그네2를 보았는디 이석규 2003-01-09 1272
329     Re: 김주영님이 올린 리플 朴 俊 珪 2003-01-09 1087
328  물과 성령으로 남 김주영 2003-01-07 1427
327  저의 예루살렘은 이석규 2003-01-04 1113
326     Re: 벽돌이 되어가는 과정...(?) 朴 俊 珪 2003-01-04 1095
325       Re: 벽돌이 되어가는 과정...(?)/역청도 역청 나름 이석규 2003-01-04 1253
324         예수님은 벽돌을 만드시지 않죠. 朴 俊 珪 2003-01-04 1104
323           Re: 예수님은 벽돌을 만드시지 않죠. 김주영 2003-01-04 1018
322  인간과 구원 김주영 2003-01-04 1058
321  나그네의 글을 읽고 이석규 2003-01-03 1038
320     그동안 적조하더니만... 첨부화일 : KeunEumNtu6 9.jpg (221984 Bytes) 朴 俊 珪 2003-01-04 1175
319       Re: 소경들에게 소경들 2003-01-14 1028
318     Re: 나그네의 글을 읽고 첨부화일 : 구름.jpg (54246 Bytes) 김주영 2003-01-04 1112
317  4) 나머지부분(나그네 글에 대하여) 朴 俊 珪 2003-01-02 1453
316  3) 성경을 보는 공식(나그네 글에 대하여) 朴 俊 珪 2002-12-29 1321
315     Re: 3) 성경을 보는 공식(나그네 글에 대하여) 김주영 2002-12-30 1062
314  2) 동산과 여자(나그네 글에 대하여) 朴 俊 珪 2002-12-29 1258
313     Re: 2) 동산과 여자(나그네 글에 대하여) 김주영 2002-12-30 1041
312  1) 천국과 셋째 하늘(나그네 글에 대하여) 朴 俊 珪 2002-12-29 1329
311     Re: 1) 천국과 셋째 하늘(나그네 글에 대하여) 김주영 2002-12-30 1101
310  나그네님의 글 <한글2000파일> 첨부화일 : 성경의 비밀.hwp (199680 Bytes) 김주영 2002-12-26 1024
309     우선 언급해 드리자면... 朴 俊 珪 2002-12-27 1049
308       Re: 우선 언급해 드리자면... 김주영 2002-12-28 1084
307  Re: 창세로부터... <퍼온글> 朴 俊 珪 2002-12-26 1704
306  믿음으로만 배부를 수 있는가? rklee 2002-12-20 1138
305     하나님의 영은... 朴 俊 珪 2002-12-21 1158
304  궁금증이 있어서요... 저기~~ 2002-12-14 1060
303     Re: 궁금증이 있어서요... 첨부화일 : 공룡1.jpg (216053 Bytes) 김주영 2002-12-17 1085
302       Re: 궁금증이 있어서요... 저기~~ 2002-12-21 1150
301         Re: 궁금증이 있어서요... 첨부화일 : 공룡2.jpg (216545 Bytes) 김주영 2002-12-25 1170
300           知識과 智識 朴 俊 珪 2002-12-25 1136
299     먼저 상징성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朴 俊 珪 2002-12-14 1163
298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 김주영 2002-12-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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